붓다의 가르침은 어디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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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151회 작성일 24-04-18 18:02본문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무상하다고 설법하셨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함께 그 변화를 받아 들여야 이 시대에 적응 할 수가 있다. 뜰 앞에 낙엽이 붉게 물드는 것은 가을을 읽을 수 있고 담장밖에 뿔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소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변화를 정확히 읽어야 이 시대에 필요한 붓다의 가르침이라는 상품이 어떤형태로 가공되어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예전에는 기업이 일방적으로 상품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소비자의 취향과 선호도 등등을 끊임없이 조사하고 연구하여 소비자를 왕으로 모시는 시대에 살고 있다. 붓다의 가르침이 진열대에 전시된 상품이라면 어때야 할 까 선택받을 수있는 이 시대에 필요한 상품이어야 한다. 아무리 좋고 훌륭해도 소비자가 찾지 않으면 소용없다.
부처님께서도 연꽃을 바라보시며 더러움 속에서 아름답게 피어나는 진리성을 보았고 뱀이 허물을 벗는 모습을 보시면서 낡은 생각과 고정불변이라는 허망한 생각들을 뱀이 허물벗듯 벗어버리라 하셨다. 그러고 보면 어느 것 하나 붓다의 가르침 아닌 것이 없다. 다만 어리석어서 모를 뿐이다.
법을 만나고 승가를 만나서
수행하게 되니
어디 도량이 한곳뿐이랴
시방세계, 사이버세계 등등
도량 아닌 곳이 없다
수행을 많이 하신 분을 법력이 높다고 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면 부모력이 있다하고 몸을 잘 가꾸면 체력이 있다 한다. 세상을 바꾸려면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능력은 여러 가지로 나타낼 수가 있는데 권력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재력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법력으로도 세상을 바꿀 수 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한 가지 만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이 있다는 이야기 이다.
붓다의 가르침도 경전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수학과 과학 국문학과 음악에도 연극에도 있다. 그림 한 장이 병든 마음을 치료하는 양약이 되고 훌륭한 시 한편이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얼마나 큰 감동과 울림을 주는 지는 우리들이 지금까지 많이 봐왔다.
한용운 스님의 님 의 침묵 한편의 시는 수십 편의 석 박사 논문이 나올 만큼 연구되고 있다. 세상의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집단이나 조직은 살아남고 낙오하는 집단이나 조직은 스스로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얼마 전까지는 수학이면 수학 과학이면 과학 이렇게 독자적인 길을 걸었는데 융합과 응용으로 새로운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예전 에는 경전을 내전 이라 하여 공부하기를 권장 하였지만 다른 학문은 외전이라 하여 공부하는 것 조차 금기시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스님들이 동국대학교에 가면 못마땅스럽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과학의 시대 부처님 말씀이 얼마나 돋보이는지 문학의 시대 화학의 시대 물리학의 시대 등등이 붓다의 가르침에 가까이 다가왔을 때 오히려 붓다의 가르침은 빛나고 아름답고 당당했다. 이(理)와 사(事) 그리고 이사무애(理事無碍)와 사사무애(事事無碍)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느 것 하나 부처님 말씀 아님이 없다. 모든 것을 부처님 말씀과 배대를 처서 본다면 불법아님없다.
얼마 전 호주에 사는 불자가 찾아 온 적이 있다. 그 불자는 호주에 살면서 많이 힘들고 외로울 땐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문을 생각하고 스님들을 생각하는 그런 불자였다. 그런데 정작 주변에 한국 절에 가고 싶지만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어서 한번가려면 상당히 시간과 정성과 노력을 쏟아야 되는 정도의 먼 거리에 한국 절이 존재 하는 모양 이었다. 자주 찾고 싶어도 거리에 시간에 상당히 애로를 느끼는 모양 이었다.
그래서 사이버 법당이나 불교방송 불교tv. 불교신문등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라고 일럿더니 무릎을 쳤다. 언제 어디서던 부처님을 만나고 법을 만나고 승가를 만나서 수행하게 되니 어디 도량이 한 곳뿐이랴. 시방세계, 사이버세계 등등 도량 아닌 곳이 없다.
[불교신문 2750호/ 9월10일자]
보산스님 고양 길상사 주지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