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암스님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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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41회 작성일 24-04-18 17:50본문
산에는 꽃들이 만개하고, 거리마다 꽃길이 봄을 알린다. 차디찬 겨울을 지내고 활짝 피어난 봄꽃을 보고 있노라면 겨울이라는 시련이 이렇게 화려한 봄꽃을 피우는 구나, 하는 위안을 갖기도 한다. 저녁 늦은 시간에 사숙님이 전화 한통을 주셨다. 전 종정 고암스님의 밥상이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기대감에 잠을 설쳤다.
도착해 상을 보는 순간 가슴이 먹먹해짐을 느꼈다. 조계종 제3·4·6대 종정을 지내신 스님의 밥상이 이렇게 검소할 줄이야….
사방 한자 정도 됨직한 야트막한 밥상, 한쪽다리는 파손돼 투명테이프로 둘둘 말아서 보관하고 계셨다. 총무원 청사에서 마지막까지 지근에서 시봉하던 사숙님이 보관하고 계시다가 노령과 지병으로 앞날을 기약할 수가 없어 조카 상좌인 내게 연락을 주신 것이다.
종정 스님께서는 평소 소식하시기로 유명했다. 몇 차례 공양상을 나르고 시중을 든 일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 공양상을 통해 자세하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작은 상을 옆에 두고 밥상이 오면 밥과 국 그리고 반찬 두 가지 외에는 잡수시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리 맛이 좋은 음식이 있어도 잡수실 만큼만 잡수셨다고 한다. 이것이 수행자의 밥상이 아닐까?
요즈음 사찰음식이 많이 유행하고 있다. 사찰음식엔 특별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듯하다. 물론 건강식이라는 믿음과 전통한국음식 가운데서도 사찰에서만 전해오는 특수성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땅히 보존되고 전승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궁중음식과 다름없어 보이는 음식이 사찰음식이라는 이름으로 시중에 팔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이 과연 옛날 수행자들이 잡수셨던 수행자의 밥상이었을까 의문이 든다.
종정 스님의 밥상을 모셔오면서 큰스님의 식단을 그려 본다. 밥 반 공기, 국 반 그릇, 반찬 두 가지, 숭늉 한 그릇이 스님의 밥상이었다. 지금 우리의 밥상을 돌아보자. 수행에 도움이 되는 밥상인지 수행에 장애가 되는 밥상인지.
[불교신문3096호/2015년4월11일자]
보산스님 논설위원·고양 길상사 주지
출처 : 불교신문(http://www.ibulgy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