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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스님 법문

진정한 여래의 나툼을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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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37회 작성일 24-04-18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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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보리심 지혜 방편 담으면
그곳이 ‘부처님 나투심’ 아닐까

 

 

“부처님은 우리 곁에 어떤 모습으로 출현하실까”

 <화엄경> 여래출현품에 성기묘덕보살이 보현보살에게 물었다. “보살마하살은 어떻게 여래, 응공, 정변각이 출현하는 법을 아십니까. 저와 여러 보살 대중에게 말씀해 주소서.”

보현보살마하살이 말하였다.

“불자여, 이것은 헤아리기 어렵나니, 여래, 응공, 정등각께서는 한량없는 법으로써 출현하시느니라. 왜냐하면, 한 가지 인연이나 한 가지 사실로써 여래가 출현하는 것이 아니고 열 가지 한량없는 일로써 출현하신다.

그 열 가지란, 과거에 한량없이 일체중생을 거두어주려는 보리심으로 이루어졌고, 과거에 한량없이 일체중생을 구호하려는 대자대비로 이루어졌고, 과거에 한량없이 계속된 행과 원으로 이루어졌고, 과거에 한량없이 복덕을 닦으면서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과거에 한량없이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을 교화한데서 이루어졌고, 과거에 한량없는 지혜와 방편과 청정한 도로써 이루어졌고, 과거에 한량없이 청정한 공덕장으로 이루어졌고, 과거에 한량없이 장엄한 도의 지혜로 이루어졌고, 과거에 한량없이 통달한 법과 이치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와 같이 한량없는 아승지 법문이 원만하여 여래를 이룬다.

보현보살의 말씀이 한량없는 법으로 출현하신다니 어디 꼭 집어서 이 방법으로 한가지로만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무량한 방법으로 출현하신다고 하니 어느 곳 아니 계신 곳이 없으시다. 그렇다면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걸림 없이 나타나신다는 뜻이다.

그리고 열 가지 한량없는 일로 출현하신다고 하니 간추려보면 보리심과 자비심, 지속적으로 계속된 행과 원, 복덕과 공양, 지혜와 방편 등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가지가지행이 부처라는 것이다. 이것들을 닦아가는 것이 부처가 출현하는 것이라고 적고 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늘 선택하며 삶을 살아간다. 때론 그 길이 해탈문을 향하기도 하고 때론 그 길이 중생문을 향하기도 한다. 때론 그 길이 행복문을 향하기도 하고 때론 그 길이 불행문을 향하기도 한다. 마음은 해탈문을 가자고 하는데 몸이 중생문을 가는 것은 업력에 휘둘리기 때문이다.

업의 파도가 휘몰아 칠 때는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래서 권세를 누리던 세도가도 하루아침에 무너지기도 하고 건강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죽기도 한다.

어느 불자는 그렇게 절약하며 재산을 모으고 살만하더니 어느 날 혈압으로 죽어 아침에 웃고 나간 사람이 저녁에 시신이 되어 영안실에 누워 있으니 그 가족들의 심정이 오죽하며 어떻게 설명할까. 업설로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지금 이 순간 어디에 머물든 어떤 일을 하든 부처님이 출현하는 불행(佛行)을 실천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그것이 여래의 나툼이 아닐까.

거리의 청소부나 식당에서 밥을 하시는 분들이나 모두가 선생님이나 경찰이나 직업이라는 그릇에 자비를 담고 원력을 담고 보리심을 담고 지혜와 방편을 담는다면 그곳에 부처님의 나투심이 아닌가 생각한다. 세상에는 한량없는 직업이 있듯이 한량없는 모습으로 나투신다. 우리는 진정 여래의 나툼을 바로보고 있는지, 특별한 신통이나 기적같은 모습을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불교신문 2769호/ 11월19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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